#essay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볼 수 있는 일화 중에 일본의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에 대한 일화가 있다. > 나츠메 소세키는 소설가 이전에 영어교사로서 영어를 가르쳤는데, 어떤 학생이 "I love you"를 "나 그대를 연모하오"[^1] 라고 번역하자, 그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지. '오늘밤은 달이 예쁘네요' 정도면 충분하네."[^2] 대략 이런 일화인데, 딱히 근거는 없다. 그 어떤 기록도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낭설[^3]답게 수많은 변형이 존재해서, 나츠메 소세키가 '어떤 소설가’가 될 때도 있고, '누군가’가 될 때도 있다. 심지어 대사가 약간씩 변형된 버전도 있다.[^4] 이렇게 낭설 앞에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 낭설을 어떤 태도로 대할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낭설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부족한 정보로 인해 생기는 이야기의 빈 곳을 추측과 상상으로 채우면서 생기기도 하고, 불안감과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소문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기기도 하고, 과시 욕구나 편향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엄격한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보 전달이나 정보 전달 과정의 복잡함이 낭설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비판적 사고나 책임감 있는 정보 전달이 낭설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서 결론을 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결론을 내버리면 애초에 그런 이야기가 쓰이는 목적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진위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위여부를 중요시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본능적이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의 진위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사용하는 목적이다. 참과 거짓 위에 목적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발단과 전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선동의 기반이 된다. 참과 거짓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고, 목적에 맞게 무엇이든 끌어다 쓰는 언어 사용의 실태를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더 본질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 원문은 「我、君を愛す」이다. [^2]: 원문은 「日本人はそんなことは言わない。月が綺麗ですね、とでも訳しておけば足りる」이다 [^3]: [원문 링크](https://yohak-u.net/夏目漱石と「月が綺麗ですね」/) [^4]: '낭설'*浪說*은 순우리말로 '뜬소문' 혹은 '헛소문’이다. 보통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보기에 어울리지 않아 일부러 한자어를 사용했다.